seineee 2012. 9. 12. 22:16

 오늘은 해부실습을 위해 시신을 기증해 주신 분들의 유가족들을 모시고 합동추도식을 드렸다.

우리 조 카데바이셨던 *문* 할머니를 비롯한 34분이 올해 기증자이셨고 그분들의 가족과 의대 및 치전원 학생, 교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추도식을 드리게 되었다.

 

 집도식을 하던 그 날, 나는 남성카데바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조금 있었던 기억이 난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창백한 얼굴로 차갑게 누워계시던 카데바는 삶이 떠난 집이었고, 우리와 그렇게 3개월을 묵묵히 계셨다. 알려져 있던 history와 다른 것들이 계속 발견되어 우리를 놀라게 할 때도, 미리 멘토 준비를 하는 미숙한 손길이 닿을 때에도, 우리는 점점 지쳐갈 때도, 그 자리에 그대로. 그렇게.

 

우리과 총대가 준비한 추도문에서 '우리가 학과공부에 지쳐 게으르고 나태해 질 때 시신을 기증해 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살 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맞아, 내가 의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부를 할 수 있는, 나의 삶과 전혀 맞닿아 있지 않은 남의 몸을 만지고 가르고 쪼개볼 수 있는 그 권리는 내가 아닌 바로 그분들이 주신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장례를 치르고도 다시한번 장례를 치르는 유가족들..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 엄마를 떠나보낸 중학생 아들, 계속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 품에서 놀다가 헌화한 다음에는 눈이 빨갛던 꼬마. 

나도 누구 생각도 많이 나고, 우리 할머니 이름찾아서 헌화하는 데 괜히 눈물이 계속 나서 혼났다.

 

 나 또한 누가 죽어도 그 주변의 살아있는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하나로 정말 힘든 때가 있었는데 사는 동안 다시 보지 못한다는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보니까 더 그랬던 것같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남에게도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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