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단기선교는 저에게 여러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진료를 맡기도 하였고 가정을 이룬 후 함께 가는 첫 단기선교였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면서 가능한 여름휴가는 단기선교로 같이 가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정해진 약속을 당연히 지키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앞섰는지 왜 가야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묵상보다는 시간에 맞춰 짐을 싸고 제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을지를 더 걱정하면서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진료를 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직전에 응급실과 소아응급실을 돌고 와서 우리나라 상황과 많은 비교도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의전원 진학을 결정할 때 가장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이 선교지에서 specific한 need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증상이 없는데 다들 꾸며낸 증상으로 약을 타러 오는 아이들과 엄마들을 보면서 실망하고 속상했습니다. 굳이 제가 이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PRN 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누구라도 설명을 해주고 약을 나눠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러다가 정말 필요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약을 못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한국 소아응급실에서 열나는 아이들에게 덱사와 캐롤(해열제)을 자판기처럼 처방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답답함이었습니다. 차라리 비타민을 받으려고 왔다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 얘들은 정직하기라도 하지, 라는 생각에 비타민을 더 많이 처방해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럴 줄 알면서 왔지만 이런 식의 진료가 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 차라리 소아과 방안에서 샌드아트 사영리를 보여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더 이상 약을 줄 수가 없어 소아 진료를 마친 마지막 날까지 저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호소하는 증상을 안 믿게 되자 그냥 얼굴만 보고 이름을 불러주고 약속처방을 바로주기도 하였고 그것에 고마워하는 사람들에게도 누워서 절받기라는 생각이 들어 같이 웃긴 했지만 진짜 기쁨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선교에 가기 한참 전에 이번 선교에서 기대하는 점에 대해서 남편과 잠깐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첫 진료에 대한 기대감, 앞으로 수련받을 과에 대한 메시지, 병원생활에 당연하다는 듯이 멀어진 하나님과의 회복... 그 어느 것도 보지 못한 채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나 애통함이 없이 오히려 그들을 불신하고 미워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였고 이웃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기에는 제 안에 남아있는 사랑이 너무나 작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를 왜 보내신 걸까요?
생각해보면 제가 다른 병원에 있었더라면 인턴 때 단기선교 기간에 맞춰 휴가를 쓰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나름 인턴이라고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 남편과 제 동생까지 묶어서 저를 필리핀에 가게 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의사가 되었다고, 휴가를 써서 선교에 참여한다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하나님이 아닌 저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그곳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자리에 있게 하신 이유를 숙제처럼 남겨온 것 같습니다. 다음 선교를 갈 때에는 좀 더 사랑의 마음을 키우고 중보기도를 열심히 심고 하나님이 제게 보여주실 것들을 더욱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마주하는 환자들에게도 측은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제 안에 변화가 있었으면 합니다. 같이 기도해주세요!
준비하신 여러 손길과 함께 하신 순장님들, 간사님들, 선교를 주관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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