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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인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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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이야기 모음 1.내가 있던 병원은 급성기 치료가 필요한 질환에 대해 치료과정이 바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스타(start의 준말로 알고있다)라는 체계가 있어서 응급실에서 스타를 띄우는 순간 레지던트, 당직 교수님한테 바로 콜이 가게 된다.심근경색은 C-star, acute stroke은 B-star, Trauma는 T-star 이런 식으로 불리게 되고 연관된 모든 과가 한번에 콜이 되면서 스타 하나하나가 빠르게 일을 매우 증가시키는 - 그만큼 중환인거니까 - 그래서 응급실 인턴에겐 폭탄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그날 응급실 어땠냐를 CPR 몇개, 스타 몇개 등으로 말하고 서로 어깨를 토닥여주는 지표랄까.오죽하면 내과 레지던트가 제일 싫어하는 가수가 시스타(c-star)라는 아재개그까지 있을 정도.2. 내가 있던 병..
새벽, 응급실, 기도소리 새벽 응급실엔 술취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저녁 8시 이후로 술을 팔면 안된다는 응급의학과 교수님의 말이 너무 와닿는 날들이었다.그날도 어김없이 만취 feat. forehead laceration 여환이 왔고또 어김없이 옆에 있는 보호자도 만취 상태였다.아무튼 새벽 3시에 내원한 이 여환은 협조가 안되서 처치실이 아닌 bed side suture를 해야했는데옆 베드에 누워있는 분은 보호자가 없어 3일째 입원대기 중인 무함마드 할아버지.CT진행하고 특별한 이상없는 것 확인후 assist 준비해서 가니 5시. 열심히 suture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 베드에서 고요히 들리는. 바로 이슬람교도들이 하루 다섯번 기도한다는 알림, 아잔소리..... ㅋㅋㅋㅋㅋㅋㅋsuture하는 환자 코앞에서 큭큭 대면서 웃을 ..
그들에게 필요한 것 의정부에 와서 처음 돌았던 과는 외과였고 나는 주치의를 하게 되었다. 오더는 4년차 선생님이 거의 다 해주셨지만 프라이머리콜과 동의서 받기, 회진 준비 등은 내 몫이었다.외과는 정말 힘들었다. 그게 의정부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 오자마자 주치의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 갑자기 쏟아지는 콜이나 로딩이 이전과는 달라 약간 벅차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내 담당으로 한 명도 돌아가신 분 없이 잘 마무리되고 도와주는 주변손길들이 많아 돌이켜보면 정말 감사한 한 달이었다.내가 맡게 된 파트는 상부위장관/간담췌 파트였다. 주로 위암, 장마비, 간암, 담석, 담낭염, 맹장염 환자를 봤고 간혹 위/장천공, 췌장암 환자들이 있었다. 췌장암은 silent cancer라고 해서 발병부위에 따라 발견이 아주 늦어 수술이 안..
폐업정리 ENT 도는 중에 이런 일도 있었다. 개원의 연수강좌를 준비해야 해서 참석하는 개원가 원장님들께 연락돌리는 일을 했는데 작년에 오셨던 분 + 가까운 지역 ENT 목록을 받아 전화를 일일이 돌리는 작업이었다. 전화받는 유형별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 뭘해도 잘되겠다. 병원 메인번호로 전화를 걸면 주로 받는 사람은 코디네이터/실장 등으로 불리는 일반직원이나 간호조무사들인데 내가 원장님 참석여부를 물어보면 1) 원장님 방으로 전화를 돌리거나 (감사) 2) 지금 진료중이셔서 여쭤볼께요 어디로 다시 전화드리면 될까요? (최고) 3) 지금 진료중이셔서 몇시간 뒤에 전화주시면 알려드릴께요 (이정도면 양반) 정도의 반응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응대를 잘하거나, 최소한의 매너/개념이 있는 느낌.2. 뭘해도 안되..
방향제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환자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어 한번씩 놀랄 때가 있다. 당연하지 않아서, 환자로 병원에 온 것이다. ENT (이비인후과) 외래에서 하는 여러 검사 중에 신기한 것 중 하나가 후각검사인데 복권긁듯이 연필로 긁으면 향이 나는 종이가 12가지 정도 있고 한 개를 긁은 후 사지선다 중에 제일 비슷한 향이 난다고 생각되는 답을 고르는 검사이다. 문제는 나도 다 못 맞췄다는 건데 ㅎㅎ 환자들 중에는 진짜 냄새를 못 맡는 건지 이 냄새가 뭔지 몰라서 못 맞추는 건지 구별이 안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성이 냄새가 하나도 안난다고 왔다. 외래에 찾아오는 환자들은 흔히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놀랄 일도 아니었다. 마지막 종이를 긁고 마지막 답안을 적는 데도 갸우뚱 ..
metastasis 2017.2.12에 작성된 글입니다. 근 한달간 일어난 일들을 적확한 단어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건 내 글쓰기와 문장력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생각 정리가 다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로 그냥 일은 일대로, 삶은 삶대로, 미래는 불투명하게, 그 후 미래는 더욱 슬플 것으로 예상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달 전 남편의 보드시험이 끝난 날, 시아버님의 암 재발소식을 들었다.그리고 이번엔 전이도 된 상태였다. 나는 내 인턴생활의 클라이막스가 조혈모세포 기증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검사결과를 푸시하는 도중에 환자 컨디션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말은 내 조혈모를 받기 전 해야하는 항암치료 (환자 본인의 골수세포를 죽이는 과정)를 견뎌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며 그 전에 사망..
Donor가 되어주세요 11월 어느 날이었다. ER 나이트 근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전화 한통이 왔다. 모르는 번호라 안받았는데 같은 번호로 두번째 걸려오자 잠에 취한 나 대신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조혈모세포 기증협회였다.얼핏 깨어 들어보니 나와 HLA 매칭이 되는 환자가 있는데 조혈모세포기증이 가능할 지 물어보는 전화였고 나는 그 전화를 넘겨받아 비몽사몽간에, 하지만 항상 받던 콜을 받듯이 네 문자로 남겨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다시 쓰러져 잤다.그리고는 생각했다. 1년이라는 인턴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별의별 것들 중 뭔가 정점을 찍어줄 그런 사건이 생겼다고. 아유 드라마틱하구만, 책을 내도 되겠어. 이런 느낌.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스토리를 위해 기증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를 ..
호구말턴 이젠 모든게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시점이다. 오늘은 마지막 당직.​ 이시간에 온 뻘콜때문에 화가 나서 잠이 안온다. 오늘 수술 많은 날인데. 자기 편한대로만 생각하는 간호사들때문에 너무 짜증이 나서 이알 나이트 중인 룸메 언니와 친구랑 여행간 남편에게 마구 쏟아내고는 다시 누웠다. 나는 왜 이렇게 호구같아서 마지막까지 호구같은 콜을 받고도 화도 못내고 이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고 있는가. 마지막 당직에 이런 똥을 받을 줄이야. 아 결국 답은 퇴사라는 걸.. 퇴사 하루전에 또 새롭게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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