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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인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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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돋힌 사람들 병원에 있다 보면 쓸데없이 각을 세우는, 세우게 만드는 일들이 있다. 세상이 그런건지 유난히 병원이 그런건지 의미없는 갑질과 출처가 불분명한-하지만 분명히 가시적인 '화'가 공기 중에 떠다니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감정 쓰레기통 신세. 그래서 우리 집만큼은 가시-프리 공간이자 서로를 쓰담쓰담 해주는 곳으로 만들고 싶은데 마음은 그렇지만 요즘 피곤과 슽흐레스가 극에 달해 남편에게 계속 징징대기 일쑤였다. 어제는 아이를 가지면 이렇게 평생 애기짓을 못하고 내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를 위해 강제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어서 처음으로 애를 꼭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깐 스칠 정도. 그래서 남편한테 나중에 애가 생겨도 내가 0순위여야 한다고 세뇌교육 주입식교육 시키고 있는건..
어제의 대화 ​ ​#1 ​내일 교수님이 갑자기 오래서 학회 가야돼. 헐........ ​미안해.. 나랑 여행가기로 했다고 거짓말이라도 하지. 힝. (류의 이미 이룰수 없는 것들에 대한 징징징 반복) ​미안해..... (시무룩해 있는 오빠를 보자니 또 기죽어하는건 싫어서 말돌리기) ​#2 나 월급 @@@원 들어왔다? ​대박. ​그래도 도망가고싶어 막 (중략) ​​​그래도 그정도 받으면 일할만 하겠다. ​하나도 안 기뻐. 이 돈을 쓸 시간이 있어야지 ... ​번거 다 써도 돼 곧 연봉 ₩₩₩원 될테니까 원하는대로 질러 백? 사고싶음 사~ ​(문제는 내가 백같은 걸로 안정이나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순간 간절히 원하는 것은 바로 하루종일 푹 놓고 자는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눈물이..
차트를 잡다 여기서는 주치의 하는 걸 차트잡는다고 표현을 하는데 창원에서 논펑션으로 있다가 의정부에서 갑자기 차트를 잡게 되서 초반엔 밤을 꼬박 새는 일이 다반사였다. 마치 창원에서 몰아서 잤던 잠을 여기서 다 잠은행에 이자까지 쳐서 갚는 것 같다. 환자랑 보호자 덕분에 힘들고 화날때도 있지만 그래도 환자들 덕분에 웃고 살고 있다. 만성피로는 어쩔 수 없다. 잠을 자서 풀리는 피로는 피로가 아니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 외과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 너무 잠이 온다.
창원을 떠나며 ​​ 희한하게 눈물이 계속 났다. 모르는 새 정이 많이 들어버려서 한명한명 작별하는 게 많이 힘들었다. 후기턴이 무서워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니고, 이별이라는 게 생각보다 너무 가혹하다고 해야하나. 엄마는 이제 진짜 신혼생활 시작이네 라고 말했고 다들 서로 용기를 짜내어 힘을 내자! 하고 떠났지만 그저 아쉬운 마음은 어쩔수가 없다. 잘할수 있겠지. 할수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7월의 순간 이알 나이트 후에 며칠 전부터 가고 싶어 노래를 불렀던, 처음 가보는 로컬의 국수집을 찾아 떠났다. 나랑 유진이랑. 난 아직도 이곳 사람이 아니고 언젠가 떠날- 그것도 한달뒤에- 것이라 항상 생각하고 있어 그런지 로컬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는데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나름 정도 들었고, 이정도 살아야 이런 데를 알게된다니.. 하면서 나중에 생각날 것같아 미리 아쉬운 마음이 든다. 병원 밖에서 아침을 맞는 게 오랜만이기도 하고, 다들 출근하기도 이른 시간에 자전거를 끌고 나와 쨍한 햇빛을 받으며 큰 교차로의 신호를 기다리는 일은 묘한 자메뷰였다.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번쩍번쩍했을 도로 사이에 있는 조용한 24시간 국수집. 이런 여행같은 순간. ​​ 크 저 살얼음 ​​​​​​ 둘이서 세개시..
이달의 환자 이달의 환자 레몬디톡스 한다고 3일간 레몬물만 마시다가 배가 찢어질듯이 아파서 온 20대 여환 택시기사가 다짜고짜 베드갖다 놓으라고 전화해서 봤더니 택시에서 출산해버린 외국인 산모 아티반맞으려고 와서 아티반 주러 간호사가 가고있는데 간호사가 짜증나게 했다고 라인빼버리고 스테이션으로 와서 차지랑 대판 싸우던 환자 복통으로 와서 복부 촉진하는데 "아가씨!하지마요!" 하면서 손목꺾어버린 환자 술먹고 구타당해 왔는데 스테이션에서 얘기하는 거 시끄럽다고 제발 조용히 좀 쉬자고 소리치던 환자 보안요원들하고 싸우고 응급실 자동문 발로 차서 새벽 3시에 시설팀 불러서 문고치게 만들고 신고돼서 경찰이 왔다가 경찰하고도 싸운 술취해서 쌍욕 내뱉던 개저씨 응급이라고 해서 왔는데 왜 응급관리료를 내야하냐고 난리치던 부모 - ..
최후의 수단 잠이 안와서 한달만에 수면유도앱을 켠다. 글쓰려고 메모장에 적어놓은 글은 많으나 지난번과 달리 짝턴이 여자여서 수다떨고 드라마보고 하느라 글을 쓸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나저나 왜이렇게 잠이 안오지. 오늘 나이트만 하면 이제 휴가인데. 하... 8월은 어찌 지나가려나.
주말의 잔해 ​​​ 이번 주말엔 몇명이나 왔을까 이 유행에 민감한 아이들이 쉬지않고 오는데 나는 점점 덱사자판기 + verbal sedation의 달인이 되어가고 목소리는 다시 골로... 이 와중에 정말 갱상도 싸나이스럽게 무뚝뚝한 보호자가 애기 열 내렸다고 "감삼다" 라고 하는데 당황&민망 ㅎㅎ 한명을 해치우면 두명 차트가 들어오는 기적적인 시간들 ㅋㅋㅋㅋㅋㅋㅋ 중간에 느낌이 이상해서 기숙사에 다녀와야겠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은 애들이 4명. 응급실턴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부탁해놓고 방에 올라오는데, 도망가면 이런 기분일까? 똥싸지르고 동기들한텐 미안하고 근데 나는 가야겠고 걱정은 되고 답은 없고. 한 1/10정도 간접체험이랄까 ㅋㅋ 다른 동기한테 얘기했더니 여기에서 그런 느낌을 느끼더니 후후 하면서 웃었다. 다음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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