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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인턴이야기

방향제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환자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어 한번씩 놀랄 때가 있다.
당연하지 않아서, 환자로 병원에 온 것이다.

ENT (이비인후과) 외래에서 하는 여러 검사 중에 신기한 것 중 하나가 후각검사인데
복권긁듯이 연필로 긁으면 향이 나는 종이가 12가지 정도 있고 한 개를 긁은 후 사지선다 중에 제일 비슷한 향이 난다고 생각되는 답을 고르는 검사이다.
문제는 나도 다 못 맞췄다는 건데 ㅎㅎ
환자들 중에는 진짜 냄새를 못 맡는 건지 이 냄새가 뭔지 몰라서 못 맞추는 건지 구별이 안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성이 냄새가 하나도 안난다고 왔다.
외래에 찾아오는 환자들은 흔히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놀랄 일도 아니었다.
마지막 종이를 긁고 마지막 답안을 적는 데도 갸우뚱 하며 모르겠다고 한 후 환자가 한 말이 충격적이었다.

"집에서 방향제 냄새 같은 게 좀 나는 거 같았는데..."

향을 진짜 맡은 건지 그냥 순간적인 착각인건지 알 수 없지만 전자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찾아온 것이다.
정작 검사에선 코에 종이가 들어갈 정도로 맡아봐도 아무 냄새가 안나자 허허 웃으며 남긴 한 마디에 아쉬움이 무겁게 담겨있다.

그냥 지금 옆에서 쿨쿨 자는 남편의 땀냄새가 고마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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