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때처럼 동의서를 받으러 갔다.
나는 CT 동의서를 받을 때 이전에 조영제써서 검사해본 적 있냐고 물어보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똑같이 물어봤고 금요일에 찍었는데 왜 또 찍냐고 환자가 묻기 시작했다.
담당과장님이 더 자세히 봐야할 병변이 있어서 다시 찍는 거라고 했더니
그때는 왜 못보고 지금 조영제써서 찍는 이유가 뭐냐고 하길래
달라지는 점을 찾기 위해 그런거라고 설명을 하면서 그래서 조영제를 쓰는 거라고 동의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말끝마다 막아서 그런데 똑같은 얘기 들었고 왜 또 같은 설명을 하냐는 식으로 계속 말하더라. (여기서 1차 인내)
그럼 무슨 얘기를 듣고 싶으시냐고, 검사를 해야 결과가 나와서 정확한 치료를 할텐데 검사 안하실거에요? 했더니
그런 말이 어디있냐며 자세히 설명도 안해주고 왜 계속 찾아오냐고 (이때까진 옆에 보호자가 그니까 찍어보라잖아 하고 말림)
그래서 설명해드리려고 하는 거라고 제가 담당의가 아니어서 그 이상은 잘 모른다 했더니
담당의도 아닌 사람이 와서 설명하고 동의서 왜 받으러 온거냐고(여기서 2차 인내. 내가 잡일 시키는 대로 하는 인턴 나부랭이라서 그런다고 설명할 수도 없는데 그 사실에 또 화가 남)
아가씨가 어쩌고 저쩌고 하길래 (여기서 이제 터짐)
저 아가씨 아니고 의사거든요? 한마디 말에
환자가 완전 폭발해서
내가 지금 말실수 하나 했다고 그렇게 말할거냐고 그럼 니가 말한 대로 담당의도 아닌데 와서 동의서는 왜 받는거며 환자가 말한마디 잘못했다고 그런식으로 해도 되냐고, 나도 고객이고 이 병원아니면 갈데 없는 것도 아니라고 누가 담당의도 아닌 사람한테 설명듣고 하고 싶겠냐고, 지난 금요일에 응급실에서는 ct찍고 그냥 가라해놓고 왜 지금 와서 또 찍는거냐고 주말 내내 붓고 아파서 오늘 외래에서 입원하라고 했을때 두말않고 바로 입원했는데, 병변이 점점 커지고 아프니까 다시 찍어본다 하면 되는 걸 가지고 왜 설명을 안해주고 아가씨라고 할수도 있고 형님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 대우 안 했다고 그거에 화나서 환자한테 그렇게 말하면 되냐마냐 그러는데
환자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없지만 동의는 하기 싫어서
그냥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더니 계속 자기가 맞다는 식으로 얘기하길래
환자분이 아프고 힘들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이해는 하는데 내가 아가씨라고 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한건 잘못한거고 죄송하다고(하니 의외라는 듯이 표정이 바뀜) 담당의는 아니어도 차트보고 왔다고, 그 전에 설명해드리려고 해도안듣고 말하려고 하면 가로막고 그러면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하니까 아무말 안함.
환자가 계속 큰소리 치는 동안 간호사가 라인 잡으러 왔길래 내 감정이 아직 정리가 안되서 좀 시간차를 두고 동의서 받으려고
이거 하시고 다시 올게요 동의서는 이따 받을게요 했더니
얼마 걸리지도 않는 거 그냥 지금 하란다. 부들부들.
그러게 얼마 걸리지도 않을 걸 언쟁하고 계셨던 분이 누구신데.
조영제 부작용 설명하고 있는 내 자신이 괜히 서러웠다.
사인받고 나서 왜 아가씨라는 말에 화가 났는지 설명하면서 사과하고 싶었는데 설명하기전에 눈물부터 날거 같아서 그냥 빨리 나와버렸다. 이것도 너무 속상해.
<화낸 이유 분석>
1. 밤당직이라 잠을 잘 못잤고
2. 아침에 밥거르고
3. 하필 이제까지 아가씨 어이 소리 들었던 게 그 사람한테 폭발해서
4. 내가 화를 못 참은게 스스로 너무 속상하고
4-1. 이렇게 편한데서, 일한지 한달만에 분을 내다니
4-2. 분을 표출한 것도 스스로 생각할 때 너무 오글거리고 자격지심 폭발한 거 같음. 그래도 승질 부린거 아니고 또박또박 틀린 것에 대해서만 말해서 이건 다행이었음.
5. 왜 내가 시술 하나 동의서 하나 받는데 환자 달래가면서 구걸하듯이 받아내야 하는지 그것도 너무 짜증나있는 상태였음.
내가 남자의사 였으면 이런 꼴을 당했을까?
콜도 쌓여있는데 어떡하지
동의서는 꼴도 보기 싫다
생각하면서 5층에서 10층까지 걸어올라가면서 울었다.
<깨달은 것>
1. 아프다고 다른 사람한테 막말할 권리는 없다.
2. 생각보다 여자라는 것이 직종불문 핸디캡이다.
3. 의사대우를 바라는 게 아닌데 너무 꼬인 사람이 많다.
4. 급해도 환자 상태를 좀 보고가자.
5. 화내고도 더 속상한 건 결국 나다.
16 인턴이야기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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