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이후로 생리가 조금만 늦어져도 임신에 대해 생각하는게 당연해졌다.
인턴일때는 애가 생겼으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이 앞섰다면
요즘은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지 기다림이 먼저랄까.
나는 두세달에 한번씩 심한 생리통과 PMS를 겪는데 대학교 다니면서 좀 심해진 경향이 있어서
산부인과도 몇 번 가봤지만 근종이랄지 걱정할 만한 구조적 이상은 없다하여 그런가보다... 하며 진통제로 버티고 있다.
예전에는 생리를 왜 할까 이런 짜증섞인 질문을 하진 않았는데
최근들어 생리통이 심한 날엔 평소보다 일의 능률이 너무 떨어지고 일을 하지 않는 날엔 꼼짝 못하고 12시간 이상 잠을 자기도 해서
대자연이 원망스러운 날이 꽤 있었다.
각설하고 지난 생리기간에는 예정일보다 5일이나 늦어지고 유난히 생리통이 심했다.
(늦어지는 동안 몸살이 같이 와버려서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임테기를 두 개나 써봤지만 돌아온 건 한 줄짜리 두 개)
이전에는 막연히 아랫배와 허리가 끊어지듯 아팠다면 이번엔 "해부학적으로 내 자궁이 어디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통증이랄까.
너무 아파서 잠이 안 오길래 남편에게 말했더니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이전에도 이렇게 아픈 적 있어?" 라고 묻는다.
순간 '아.. ectopic* 의심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걱정할까봐 "이전에도 이런적은 있는거 같ㅇ..."라며 얼버무려 버렸다.
* ectopic : 자궁외 임신인 ectopic pregnancy를 줄여서 보통 이렇게 말하는 편
아, 아는 게 이렇게 무섭달까.
통증이 너무 심해서 나도 그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남편이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너무 걱정스러웠다.
응급실에서 봤던 ectopic 환자들이 마구 생각나면서 갑자기 수술해야 하면 어떡하지, 부터
hCG 상승은 없었는데, 없어도 ectopic일 순 있긴 한데, 생리도 늦어졌고, rebound tenderness는 없는데, 그건 아직 파열까진 아니어서 그런가, 그러면 혹시 모르니까 약도 먹지말고 (통증이 억제돼서 더 심해졌는데 모를까봐) 핫팩도 하지말고 버텨봐야겠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과 피곤함이 몰려 급 잠이 들어버렸다.
다행히 지금 멀쩡한 걸 보면 그냥 생리인 것이 분명했지만
아는 것과 알아챈 것이 무서웠다.
모르면 무섭지도, 아쉽지도, 괜히 억울하지도, 걱정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