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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막달에 들어서

1. 에어컨 실외기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날씨에

여행 긴장풀리고 활동반경이 침대 주위 10m 이내로 축소,

거기다가 막달이라 몸도 불어서 완전 뒤뚱뒤뚱거리는데

이걸 한 달을 더해야한다니 라는 말이 한번씩 튀어나오는 와중에 

그래 일단 뱃속에 있을 때 만큼은 내가 더위먹지 않도록 지켜줄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소름이 돋았다. 

내가 엄마라니. 엄마라니!!!



2. 남들은 마지막으로 혼자 있을 때를 즐기라고 하는데

출산까지 남은 시간이 넘나 더운 날들밖에 없어서 집밖에 나가기 어려운 게 괜시리 억울하고

다음 번엔 꼭 봄에 낳으리라 다짐을 해보았다 ㅋㅋㅋ



3. 그래도 최근 한 1-2주 전부터 39-40도 찍던 폭염이 수그러들어서 

치골통과 무거운 몸을 이겨내고 저녁에 매일 같이 친구들 만나고 놀러다녔는데

마냥 즐거웠다가도 아이와 따로 또 같이 커나갈 내 자신의 삶을 생각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엄마는 아직까지도 우리가 엄마라고 부르면 묘한 괴리감?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고 했는데

나에게 엄마가 있는 건 항상 당연했지만

엄마에겐 애가 있는게 당연하지 않았던 날들도 있었으니까 그러지 않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어렴풋이 든다.

이것도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이겠지.



4. 당장 8-10월 새로운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날 예정이다.

출산, 축복이, 집 구하고 이사, 남편의 새로운 직장.

단순히 육아로 인해 나의 생활(시간)패턴이 바뀌는 것 뿐만 아니라 

나름 1년 반 이상- 그것도 아무 일 안하고 집순이로 집과 라뽀를 쌓은 게 학창시절 이후 거의 처음인 주부생활을 하면서 정과 미련이 남은 서울 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라서 그새 익숙해진 생활반경, 풍경, 시간들이 발목을 잡는다. 

생각해보면 친정가까이로 가는 것이 출산/육아에 데미지를 입을 내 정신건강에 이득이 훨씬 더 많을 것 같은데도 

아직 완전히 나의 문제가 아니라 일단 애 낳고 생각하자! 라는 식으로 잠깐 미뤄놓은... 

남편과 축복이가 던져준 퀘스트 같은 느낌인데

이걸 또 남탓을 하기 시작하면 내가 너무 고통스러울 게 뻔해서 애써 그런 생각까지도 구석진 곳에 박아놓은 상황이다.


축복이 백일까지 나도, 축복이도, 우리 모두가. 성장할 예정.



5. 엄마가 나 태어났을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랑 양말을 챙겨왔다.

그렇게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도 이걸 안버리고 뒀다니.

존재만으로도 귀한 것들이 있다. 

가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축복이 태어나면 입고 나중에 또 물려줄 수 있으면 물려주도록 나도 잘 간직해야지.




6. 19호 태풍 솔릭이 오면서 예정되어 있던 분만 날짜를 이틀 미뤘다.

굳이 태풍이 온다는 데 애를 낳을 필요가 있냐는 엄마와

그보다는 좀더 이성적인 이유로 태풍이 엄청 강력하다는데 혹시라도 정전되거나, 응급상황이 생기면 트랜스퍼가 어려울 수 있고, 병원도 30분정도 걸리니까 차로 가는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들은 남편의 주장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 결과 음... 원래 정했던 날짜에는 비 한방울 바람 한점 없이 후덥지근한 보통의 날씨였고

오히려 나중에 정한 날짜에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불편하고 힘들어서 잠못자고 뒤척이는 날이 이틀 더 늘어남 ^^


뭐,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라 누구 탓을 하겠냐만

어제는 몸이 힘드니까 억울하고 응앙응앙 다 밉다고 떼쓰다가

그래도 이틀 동안 하고싶은 거 좀 더 하고, 준비도 더 하고,

오늘은 남은 하루 뭘하고 다닐까. 어떤 마음의 준비를 더 할까, 나에게 왜 이틀을 더 주셨을까 고민해봐야겠다는 성숙(?)한 생각이 들었다 ㅋㅋㅋㅋ


벌써 내일이다.

내일. 축복이 생일. 뜨거운 여름을 뜨겁게 지내고 너를 맞이한다.

아직은 너보다 나를 더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내가 행복해야 너도 행복하고 너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테니까.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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