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내가 화가 나고 힘들고 많은 걸 포기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라도 ㅡ 특히 그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남편은 자기 탓을 하라고 했지만 그게 될리가.
내가 신경을 쓰고 열심히 도우려고 할 수록 그 화는 짙어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힘을 안낼까 왜 약하게 그럴까 왜 어른인데 아이처럼 굴까 왜 설명을 할수록 내가 힘들까
하는 과정을 몇번을 반복하면서
내 스스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 방법으로
짐짓 모른체 가시돋힌 말을 하고
짜증을 드러내고
나중에는 모든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 편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날 때마다, 도리를 해야한다고 느낄 때마다 중요한 선택에 대해서는 항상 개인적인 감정이나 욕심을 접어두고 가족을 먼저 생각하려고 애썼다.
내가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물밖에서 말로만 구할 순 없는 것이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대놓고 무시를 해서 너무 속상하셨다는 최근의 그 날을 복기해볼때
오히려 나는 내가 무방비상태였기 때문에 적의같은 건 보일 수가 없었다.
이전의 수많은 날동안 내가 보였던 작은 발톱들이 쌓여서 그런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원체 이기적이고 싸가지가 없는데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인 줄 몰랐기 때문에 다들 실망하고 서운하고 속상했겠지.
좋은 말만 하고싶고 좋은 얘기만 듣고 싶은 그런 기념일에
고생했지만 많이 서운해하셨다 도 아니고
이제까지 하나도 잘한게 없다는 식으로 들려서 내 나름 충격과 공포와 상처였다.
백번 잘해도 말한마디로 다 까먹히게 만든 게 내 업보, 누굴 탓하리.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나와는 다르기때문에 힘들고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내 감정 배출이 잘 한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기엔 너무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결국 각자 난 이만큼 참고 눈치봤다고 생각하고있고, 참다가 참다가 참아지지 않는 포인트 한번에 서로 크게 상처입는 것이다.
이게 나의 최후의 변론이자
변명이라면 변명이자
반성문이다.
note
앵그리드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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