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인 변화를 제외하고 정말 내가 바뀌고 있는 점을 꼽아보자면 '굳이' '빨리'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의 나는 10초 남은 횡단보도 뛰어건너기(동행인들은 결국 못건너고 기다림), 100미터 앞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버스 잡아타기 등
급한 성격에 걸맞는 날랜 행동으로 친구들을 많이 놀래켰고 이젠 그런 행동이 나의 시그니처가 될 정도로 나=빠름이라는 등식이 공공연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벌써 임신 7개월차가 되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나서 처음으로 두려웠던 장소는 지하철역이었다.
그렇게 배아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임신을 트라이한지 6개월만에 착상되었던지라
사람들이 많은 곳, 특히 불특정다수에게 부딪힐 수 있는 곳인 지하철 환승역 같은 곳은 초기 임산부에게 던전만큼이나 위험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전엔 아무렇지 않게 에스컬레이터 왼쪽 걸어올라가는 줄을 따라 서서 누구보다 빠르게 윗층에 도착했다면
행여나 부딪힐까봐 배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천천히 환승행렬의 물살에 몸을 맡겨 에스컬레이터 오른쪽 줄을 기다리는 것이 나의 모습이 되었다.
지하철 안 임산부배려석은 사실 바라지 않는 편이 나을 정도로 다들 앉아있다.
처음엔 내가 임산부이면서도 또다른 티나지 않는, 그 자리가 필요한 임산부에게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산부배려석 아닌 일반석이 비어있으면 그 자리에 앉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양보아닌 양보를 하고 지켜본 결과 내가 비워둔다고 해서 임산부가 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누군가 앉아있거나, 혹은 내가 일반석에 앉아있을 때 임산부배려석을 비워두기 위해 서서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괜히 저 사람의 자리에 앉아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에는 그냥 배려석이 비어있다면 내가 먼저 앉아버린다.
이제는 누가봐도 임산부, 영락없는 임산부이지만 배려석 앞에 섰을 때 알아서 양보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초기 입덧이 심할 때 얼굴색이 안좋았는지 자리 양보해주신 할주머니와 6개월차 되던 때에 처음으로 버스에서 젊은 여성분께 자리 양보받은 일 외엔 아직까지 배려받은 경험이 많지는 않다.
나뿐이겠나, 39주에 지하철타고 가던 아는 언니도 (39주면 아무리 생각해도 똥배라고 인식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 핸드폰을 아무리 보고있어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크기이다..)
절대 비켜주지 않던 수많은 매정한 시민들을 대하면서 울컥했다고 하니 아직 7개월차 쪼렙(?)은 서서가는 수밖에 ^^
아무튼 이제는 횡단보도 초록불이 깜빡이고 10초가 남아있어도 뛰어가지 않는다.
생애 그래본 적이 없는데 정차중인 버스를 보면서도 돌진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 내릴 때엔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서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정차 후 일어나도 될 만큼의 여유와 이유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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