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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2022.2.15-21 코로나격리일대기

지금 생각해보면 2월에 걸린 게 다행인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3.16일 일일확진자 62만명을 찍었고 3월부터는 의료인 격리 3일 권고(일할 사람 없다 그거지, 내가 일하는 병원은 본인양성은 5일 격리, 가족 양성은 검사후 음성시 근무)로 바뀌어서 차라리 일주일 쉴 수 있었던 때 걸린 게 나았다.. 라는 생각마저 드는 요즘. 우리 병원도 결국 코로나 양성 환자를 수술하게 될 상황이다.

이제 특별할 것도 없어진 내용이지만..
문자그대로 24/7 붙어있던 세 가족의 코로나 격리 일대기를 남겨본다.


2.15 격리1일차
새벽에 남편 양성 나온 거 확인하고
7시 좀 넘어서 과장님이랑 수쌤한테 연락드림
어머니 오시지 말라고 연락드리고 급하게 쓱배송으로 장보기 잠에서 덜 깬 축복이 들쳐메고 병원갔더니 검사는 9시부터 시작이라 함 설상가상으로 눈도 내림 ㅋㅋㅋ
차에서 티니핑보여주면서 기다리다가 검사 1번으로 했는데 울고불고 난리

일단 다시 나가서 약국가서 애기약 어른약 5만원어치 사오고 카페들러서 콜드브루 원액이랑 베이커리 들러서 빵사오고 이때부터 힘들기 시작

집에 왔는데 남편은 방에서 누워있고(다른 사람들한테 출근하지 말라고 연락돌렸다고 하긴함-.-)
나는 애기 밥 챙기랴 내밥 챙기랴 연락돌리느랴 제정신 아님
코맵고 목 따가운 인후통이 나타남.
애기는 그전날 목으로 발진이 쫙 올라왔는데 그러면서 배가 자꾸 아프다고 함ㅠㅠ (알고보니 비염이나 아토피있는 애들은 피부나 장염 증상도 나타난다고 함)

남편한테 애기도 열나고 나도 증상 나타나니까 그냥 마스크 벗고 방에서 나오라고 함-.-
애기 약때문에 고민하다가 응급실 쌤이 처방해다 줌 ㅠㅠ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둘다 양성..
이렇게 우리 셋 격리 시작.
마스크 벗고 쏴리질러!!

보호자가 아이조사서도 같이 제출해야하는데 애랑 접촉한 사람 이름 연락처 다 쓰라고 함🤦🏻‍♀️




2일차


눈이 펑펑 내리는 중
축복이가 새벽에 머리아프고 배아프다고 두번깸. 열은 37-39도. 계속 약을 번갈아가면서 먹임.
나는 계속 춥고 선잠을 잠(그래도 예방접종보다는 덜 아픔)
다행히 수술방은 다 음성 나왔다고 하고 어린이집은 기다리는 중
보건소에서 전화와서 내꺼 축복이꺼 웹진단? 제출하고 전화기다림
접촉한 사람 명단을 다 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함… 말도 안돼고 이때부터 K방역 끝났구나 하고 느꼈음 ㅋㅋㅋㅋ

아침부터 어머니가 너무 걱정을 하시고 계속 음식을 해다주심
먼저 격리되었던 친구도 온갖 먹을걸 보내줌 (도넛+도라지청+소이연남 밀키틐ㅋㅋㅋㅋ)
이마트배송 와서 정리하고
온갖 곳의 안부 연락을 받고 있음
같이 놀러갔던 애들(ㅅㅇ, ㄷㅎ) 모두 확진 나옴
축복이는 열나기 전에 계속 해열제 먹이는 중 아침 시리얼 점심 우삼겹볶음+어머니표 상추겉절이
저녁 곰탕+불고기
우연의 일치로 일주일 넘게 안오던 티니핑 한글쓰기가 도착해서 오전은 어찌어찌 보내고 오후는 쿠키만들고 티니핑 집짓고 책도 읽고 이래저래 보냄
축복이는 해열제 덕분에 열은 안나고 다행히 잘 놀고 있음
엄마 전화했더니 이와중에 놀러갔다 왔고 자가키트 음성이라고 목이 잠겼다는데 열은 안난다고 하고 있음.. 에휴
남편은 8시부터 소파에서 자고
시은이는 9시에 자고
나는 12시쯤 잠


3일차
며칠차인지 어느요일인지 기억도 잘 안남 ㅋㅋㅋㅋ
어린이집에서 애들 2명 확진됐다해서 넘나 죄송..
격리확인서랑 레포트-.-써와야 수련기간으로 인정해준다 해서 격리확인서 요청하느라 전화했더니 보건소 아무데도 안받고 계속 통화중 - 민원 넣었더니 오후쯤에 바로 보내드릴테니 민원 취소 해달라고 전화옴..
공무원도 극한직업…
티니핑 팔찌만들기 덕분에 오전시간은 잘 보냄 ㅋㅋ
축복이 만족도 최최상 ㅋㅋㅋㅋㅋ
쿠팡으로 시킨 치약이랑 축복이 놀잇감(티니핑 퍼즐, 뽀로로 스티커책 등)으로 놀고
아침은 빵식
점심은 주먹밥+어제먹은 불고기
저녁은 오리고기간장주물럭
엄마는 결국 양성 나오고
이모랑 사촌언니한테 연락옴 ㅎㅎㅎ
동생도 아프다 해서 너무 과민반응이다 생각했는데
결국 양성이 나올것 같다
많이 아프다고 해서 걱정.. 혼자 있을텐데
축복이는 낮잠을 안자니까 5시부터 완전 하이퍼로 돌아다니면서 통제가 안되더니
밥먹고 약먹고 샤워하고 책읽고 8시에 아빠 나 졸려 하고 1분 컷으로 주무심.. 열은 없고 발진은 많이 나아졌는데 색소침착처럼 남을까봐 걱정 ㅠ
구역예배 드리면서 가족들 상황알리고
옷소매 붉은끝동 마지막회까지 다 보고 잠
오빠가 미각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해서 안타깝 ㅠㅠ


4일차
이축복씨가 땡깡을 부리는 걸 보니 다 나았나보다.
오늘은 오빠가 환기도 청소도 설거지도 해줬다.
이모랑 목사님이 갑자기 오셔서 문앞에 과일을 몽땅 두고 가셨고 동생이 부러워했다. (동생은 아침에 양성, 아빠는 음성)
엄마는 목소리가 완전 맛이 가버렸고 어머니는 다행히 잘 계신다.
점심은 오리고기남은거랑 곰국
저녁은 피자+주먹밥
자기전에 오빠랑 오랜만에 미래에 대한 이야길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항상 참 어렵다.
서울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이젠 딱히 별 욕심 없다고 했더니 오빠가 쓸쓸하게 말했다. 자기때문에 여기 와서 그런지, 여기서 수련받아서 그런지, 아이때문에 바뀐건지.
상황은 항상 변하고 나도 변할 것이다. 코로나가 서울이고 지방이고 다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있고. 지금 여기 사는 삶이 엄청나게 불만족스러운 것도 아니고.
물론 이제는 내가 큰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물질적으로 어렵진 않을 거란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여유다.
당장의 목표는 전문의이고 그 이후에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사실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목표하는 바도 없다. 그저 이렇게 우리 가족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것이 목표지. 물론 격리중에 할 얘긴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많은 생각이 흘러간다.


5일차부터는 심지어 기록이 없네 ㅋㅋㅋㅋ
나도 미각후각을 잃어서 커피향과 온갖 맛이 안나는 바람에 세상을 잃었고
남편은 하루먼저 격리해제 돼서 집에 쌓여있던 온갖 쓰레기, 음식물쓰레기, 기타 등등을 다 해결해 주었다. 온갖 구호물자에 사랑을 느끼고 마실 물을 매일 새로 끓이고 돌밥돌밥하면서 팔찌공장 쿠키공장 놀이공장 새책공장 새옷공장 글라스데코공장 돌리다가 미각과 후각을 미세하게 잃은 날들.

이정도로 겪고 나니 앞으로 90일간은 천하무적이 되었으니 나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나 혼자만 며칠더 격리하면 안돼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더랜다 ㅋㅋㅋㅋ 우리는 코로나 증상때문이 아니라 육아때문에 힘들었던 거 같음.

암튼 제일 좋은 건 영문도 모르고 24/7 같이 엄빠랑 붙어있던 울 축복이 ㅎㅎ 많이 안아파서 다행이야.

* post-covid sequelae 로 약 3주간 잔기침, 식욕부진, 미각/후각 저하 등이 있었는데
잔기침이 오래 가길래 폐렴, 결핵 등 다른 질환일까봐 걱정돼서 체스트 찍어봤더니 다행히 멀쩡.
(그러고 나서 기침 멎은거 안비밀 ㅋㅋㅋㅋ radiation tx의 힘 ㅋㅋㅋㅋ)
근데 진짜 문제가 있으면 CT찍어야 나온다고 한다..

*한달지난 지금은 멀쩡.
만성피로는 달고 사는 거라서 후유증으로 세는 것이 무의미한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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